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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항쟁기 日王 암살 시도한 일본 여인
글쓴이: 조진숙(kjs3001kr)
등록일: 2010.09.29 조회: 2604

발굴특종 | 국치 100년의 기억-문경 ‘독립지사 박열기념관’ 첫 내부 취재

대일항쟁기 日王 암살 시도한 일본 여인            

“가네코 후미코 여사의 묘소가 어디에 있습니까?”

경북 문경시 마성면 오천리에는 요즘 약도를 그린 종이를 내밀며 이렇게 묻는 일본인이 부쩍 늘었다.

그들은 한 여인에게 참배하기 위해 일본에서 이곳으로 왔다.

그렇다고 그녀와 연고가 있거나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가네코 후미코(1903~1926)는 1924년 일왕 폭살(爆殺)을 모의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로 감형되자 옥중에서 자살한 일본 여인이다.

그리고 그녀는 문경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열(1902~1974)의 첫 부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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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바시카(러시아의 남자 겉옷)를 입은 박열과 그의 부인 가네코.

박열과 옥중 혼인… 문경 가네코 墓所와 기념공원에 일본인 참배 붐

日本, 대역죄인이 그립다?

한국의 정서로 보자면 식민지 시절에 그녀가 한 행위가 영웅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일본인들이 왜 자국의 왕을 죽이려 했던 대역사건의 범인 무덤 앞에 절하려고 먼 길을 달려왔을까?

고개가 갸웃거려질 수도 있다.

제국주의 시절 가해국의 후예로서 양심이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질곡의 시대를 전투적으로 살았던 비극적인 여인에 대한 단순한 관심일까?

마침 올해는 일제에 의해 국권을 침탈당한 경술국치(1910.8.29) 100년이 되는 해다.

한·일 관계가 이제 얼룩진 100년의 시간의 굴레에서 빠져나와 미래 100년을 설계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겨나고 있는 때에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상적인 문화코드라 할 만한 ‘가네코 후미코 신드롬’을 되새겨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가네코의 묘소는 박열기념관 오른쪽 기슭에 있다.

완공을 앞두고 있는 박열기념관의 내부를 처음으로 취재해 공개한다.

기념관에는 박열과 가네코의 사랑, 투쟁의 다양한 흔적이 마치 현재형처럼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우선 가네코 후미코의 유해가 문경에 오게 된 상황부터 살펴보자.

1926년 7월 23일 옥중 사망한 그녀는 도치기현 시모쓰가군 이에나가촌 갓센바에 있는 형무소 공동묘지에 묻혔다.

투쟁 동지들은 유골을 발굴해 수송작전을 펼친다.

후미코의 어머니가 옥중 혼인으로 시댁이 된 문경에 딸이 묻히기를 원했다고 한다.

박열의 형 박정식과 형의 장남 박형래가 그녀의 뼈를 인수해 그 해 11월 5일 박열의 선산이 있는 문경시 문경읍 팔령리에 묻었다.

1973년 그녀의 사망 47년 기일(忌日)에 묘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가졌다.

2000년 박열의사기념사업회가 발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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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 오기 전 문경읍 팔령리의 가네코 묘지.

2003년 11월 팔령에 있던 가네코 후미코의 유해를 다시 박열 생가 뒤편 자리(현 위치)로 이장했다.

유해를 인수할때 참관했던 문경의 향토역사학자에 따르면 팔령의 묘소에는 유골함이 없었으며 뼛가루도 거의 구분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일제에 의해 이후 파헤쳐졌을 가능성도 있고,또 처음부터 유골함 없이 그대로 묻었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할 수 없이 묘지 속 진토(塵土)를 정성껏 걷어와 묘소를 조성했다고 귀띔했다.

현재 일본에는 ‘가네코 코스’가 유행하고 있다.

가네코가 복역한 이치가야형무소와 우쓰노미야형무소,

그녀의 출생지인 요코하마,

그녀가 살았던 야마나시현의 다바야마촌,

외가가 있는 소마구치,

그녀가 다녔던 영어학원 자리인 세이소쿠고등학교,

박열과 동거할 무렵의 이와사키 오뎅가게와 흑도회를 만들고 잡지를 출간하던 때의 도쿄 셋방들,

가네코가 한국에 들어와 7년간 살았던 충북 부강(청원군)과

그녀의 무덤이 있으며 박열의 고향이기도 한 경북 문경이 일본인들의 참배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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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의사기념관 전시관 1층 벽에 전시된 가네코 후미코 소개 글과 사진.

9월 2일 오후 3시 경북 문경시. 태풍 ‘곤파스’가 막 빠져나간 한반도는 아직도 찔끔거리는 여우비 속에서 청명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거의 완공 단계에 있는 박열의사기념관 한쪽에 자리 잡은 가네코 후미코 묘소 앞에는 인상적인 검은 리본을 매단 흰 국화 한 다발이 놓여 있었다.

이 태풍 속에서도 일본인들이 가네코를 참배하러 찾아왔다가 놓고 갔다고 한다.

박열기념사업을 이끌고 있는 박성진(49) 예문관 대표는 “현재 가네코의 고향 마을인 야마나시현의 단체장이 문경시와 자매결연을 맺자고 러브콜을 보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사람들이 왜 일왕 암살을 시도한 여인을 이토록 추모하느냐는 질문에

“그녀를 국가 중심의 가치 잣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비극과 에너지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문화코드로 읽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고 설명했다.

“이 땅을 병탄한 가해국가의 국민이긴 하지만 당시 조선에 대해 긍정적인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었던 용기 있는 여인에 대한 자부심의 표출”이 아닐까 하는 의견도 덧붙였다.

문경시와 기념사업회는 일본의 이런 열풍을 포착했다.

한때 ‘아나키스트’로서 엇갈리는 평가도 없지 않았던 박열의 기념관을 만들고 가네코의 묘소를 정비한 것에는,

그의 역사적 업적을 분명히 하는 뜻 외에 일본 관광객들을 유치하려는 의욕도 숨어 있다.

아직 완공되지도 않은 기념관과 묘소에 일본인들의 행렬이 꾸준히 이어지자 기념사업회 측은 고무된 상태다.

[ 월간 중앙 2010.09.25 ]

이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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