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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십년을 무관심과 비바람 속에서..
글쓴이: 조진숙(kjs3001kr)
등록일: 2011.07.24 조회: 1258

 

[취재파일] 수십년을 무관심과 비바람 속에서..
방치되는 항일 유적들
 
SBS 송인근 기자 기사입력  2011/07/0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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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이 3.1절이었죠. 지난해가 조선이 일제에 강제로 병합된 지 100년 되는 해였으니, 긴 세월이 흐르긴 흘렀습니다. 1945년 광복을 맞은 지도 반 세기가 훌쩍 넘어 66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까요. 긴 시간이지만 자고 나면 세상이 변하는 사회,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잊고, 또 잃어버리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광복을 맞은 후 시간이 흐를수록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일제의 잔재들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목소리는 언제나 있어 왔습니다. 친일파가 미군정의 비호 속에 온전히 숙청되지 못한 채 우리 민족은 또 한 번의 큰 전쟁을 치렀고, 전쟁이 끝난 뒤엔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려 있다가 근대화, 산업화를 이뤄 왔습니다. 독립군을 토벌하는 데 젊은 시절을 바친 인물이 총칼을 앞세워 대통령이 되었지만, 먹고 사는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해준다기에 어느 정도 묵인을 한 채 그렇게 시간을 보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제강점 하에 고난의 역사는 우리 주변 곳곳에 그 흔적을 남겨 놓았습니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되어 곁에 남아 있었고, 굳이 가장 상징적인 건물을 찾지 않더라도, 시내 곳곳엔 일제가 할퀴어 놓은 흔적들이 많으니까요. 굳이 지리적, 공간적 잔재를 찾지 않더라도 각종 지명에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쓰는 일본식 한자어, 외래어 가운데도 이것이 일제의 잔재인지, 최근 세계화와 함께 우리네 언어생활 속에 들어온 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것도 많습니다. 

치워버렸어야 하는데 치우지 못한 잔재를 청산하는 일이 하나의 축이라면,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를 지키고 가꿔나가는 일은 또 하나의 축일 것입니다. 일제에 저항했던 우리 선조들의 자취도 36년 강점의 역사를 보내는 동안 우리 주변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광복 후 역사를 복원하려던 노력이 중단되거나 물거품이 된 곳도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할 곳입니다.

경기도 고양시에는 오랫동안 방치된 독립운동가 희산 김승학 선생의 묘소가 있습니다. 이 묘가 방치됐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골프장 한 가운데서 정확히 45년 동안 비바람을 맞아 왔기 때문입니다.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투쟁하고, 상해 임시정부 요원으로 활동했던 김승학 선생은 광복 이후 고양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당시 친일세력을 비호했던 이승만과는 같은 곳에 묻힐 수 없다는 유언을 남겨 국립묘지 대신 서삼릉이 있던 자리에 묘역을 마련해 안장됐죠. 그런데 안장한 지 2년만에 난데없이 그곳에 골프장이 들어섰습니다. 직계후손도 없어 김승학 선생은 그렇게 반 세기 가까이 모두에게 잊혀진 존재가 돼 버렸습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골프장이 묘소를 에워싸고 있지만 골프장의 잘못은 분명 아닌 것 같습니다. 누가, 거기에 골프장을 지을 수 있도록 허가를 내줬는지를 찾아봤더니 박정희 정권 시절에 누군가의 지시로 지어졌다는 답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누군가를 찾기 어렵다면 왜 묘소를 골프장 밖으로 이장시켜 보존할 움직임이 없는지 국가보훈처나 관할 지자체에 물어봤습니다.

"직계후손은 없지만 동생의 손자 쯤 되는 후손 한 명이 관리자로 등록돼 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정작 그 후손은 생활이 바빠서 묘지를 돌볼 여유가 없는데도 말이죠. 고양시 시민단체들이 3.1절을 맞아 김승학 선생을 알리는 행사를 하려 해도 골프장 안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서대문 독립공원 독립관은 순국선열위패봉안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1945년 광복이 오기 전 일제와 맞서 싸우다 돌아가신, 유해도 찾지 못한 수많은 선열들(의병운동, 옥고를 치르다 돌아가신 분, 독립군 등등)의 위패만이라도 새겨 2,835위를 모셔 놓았습니다. 그런데 위패를 모셔만 놓고 1년 내내 문은 굳게 잠궈놓았습니다. 관리인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본인들도 어느덧 백발이 성성해진 순국선열유족회 회원들(독립군이나 의병운동 하신 분들의 후손)은 역사를 되짚어가는 노력도, 선열의 발자취를 확인하는 작업도, 위패를 만드는 작업도, 나라에서는 별 도움을 준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애써 만들어놓은 위패봉안관에 관리인력 2,3명을 둘 예산을 지원 받지 못해 문을 닫아버린 겁니다. 문을 열어두면 독립공원 안에 있는 노숙자들의 잠자리가 되어버린다는 게 회원들의 걱정입니다.

같은 공원 안에 있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나라에서 손질을 하고 일반인에게 공개해 훌륭한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학생들도, 일반인들도 언제든 가서 우리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독립관은 1년 내내 문이 닫혀 있으니 뭐가 있는지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1997년에 위패를 모셔놓은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기약없는 기다림입니다.

장충단공원 옆 남산2호터널 입구 쪽에 있는 류관순열사 동상은 비바람에 녹이 슬고 곳곳이 떨어져 나가 있습니다. 동상이 녹이 스는 거야 어쩔 수 없다 해도, 떨어지지 말라고 시멘트로 덕지덕지 발라놓은 부분이 다시 떨어져나가 곳곳에 구멍이 뚫린 곳도 있습니다. 안내판 제목은 '류관순 열사 동상', 본문은 '유관순 열사'라고 적혀 있기도 합니다. 모두 다 우리가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될 일인데, 부끄럽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할머니에겐 일본놈들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고,

아버지에겐 어렸을 때 먹을 게 없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생생히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은 그 기억을 순식간에 지워버릴 만큼 빨리 흐르기만 합니다.

기억을 우리 모두의 기억으로 환기시키고 가꿔나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역사 앞에 떳떳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앞에 써 있는 문구처럼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그 역사가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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