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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외국의 사례를 통해 본 한국의 과거청산 논쟁
글쓴이: 관리자(family)
등록일: 2007.12.19 조회: 2069

과거청산은 '진실, 정의, 화해'를 바탕으로

한국의 과거 청산 움직임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국제 인권운동의 미래에 희망을 줄 사건이라 믿기 때문이다. 과거 청산이란 '과거의 식민지 또는 권위주의 정권에서 조직적으로 행해진 반민족행위, 인권침해나 국가폭력에 대한 처벌과 진상규명 및 보상작업'을 의미한다.

여기서 폭력이란 불법체포, 구금, 고문, 실종, 살인 등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인권과 법치주의 같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 위에 군림했던 법률과 제도의 '제도적 폭력'까지를 포함한다. 따라서 과거 청산은 국가폭력의 구조적 원인이 되는 권위주의 유산의 포괄적인 제거와 민주적인 제도로의 대체를 포함한다.
과거 청산은 인권 피해자(또는 희생자)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말인데 인권 가해자에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인권 피해자는 가급적 빨리, 철저하게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반면 인권 가해자는 시간 끌기 작전과 사건의 축소 또는 왜곡을 시도한다. 결국 과거 청산은 시간, 다시 말해 기억과의 싸움이 된다. 그래서 늦춰진 정의는 부정된 정의나 다름없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역사상 수많은 나라가 과거 청산 문제를 다루어 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비롯하여 군사독재를 경험한 남미의 대다수 국가들과 아시아 국가가 대표적이다. 과거 청산은 일반적으로 진실·정의·화해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과거를 청산하는 절차와 순서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진실을 밝히는 일이 과거 청산의 출발점이라면 용서와 화해가 과거 청산의 목적이자 결과가 된다. 이 과정에서 정의를 세우는 일은 과거 청산 과정에서 왜곡을 방지하고 정치적 보복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현실에서의 과거 청산은 대부분 왜곡, 변질 또는 타협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과거 청산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과거 청산이 인권 피해자와 희생자에 의해 주도되지만 현실 정치에서 권력과 기득권을 지닌 세력은 과거 인권 침해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 청산의 형식은 잘못된 과거를 한 사회의 집단적 기억으로부터 청산하는 것이지만, 내용은 현재의 반인권적 권력을 정당화시켜 주고 있는 '합리화'한 과거를 청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과거 청산은 군사독재와 같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전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 사회에서 과거 청산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전제로 한다. 즉, 건강한 시민사회의 지지와 참여 그리고 민주주의 정부의 정치적 의지가 과거 청산을 성공으로 이끄는 요소이다.
과거 청산에서 다루는 인권의 내용을 보면 고문과 같은 반인도주의 범죄(crime against humanity)가 적지 않다. 반인도주의 범죄란 특정 인권 침해가 특정 국가의 헌법이나 형법에 머물지 않고 인류 보편의 가치를 담은 국제인권법에 의해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과거 청산은 정치적 타협이 아닌 인권적 가치와 기준에 의해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문과 같은 반인도주의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의 제거는 인권의 관점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다음은 친인권 국가로 알려진 프랑스의 과거 청산 기록이다. 이 나라의 과거 청산 대상 기간은 4년에 불과했지만 그 활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비시 정부의 프랑스는 1940년 6월부터 1944년까지 4년 동안 나치 독일군이 점령한 상태에 있었다. 이 4년 동안 나치 독일에 협력한 부역 혐의자는 32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1944년 6월 '부역자 재판소'가 설치된 후 재판받은 피의자가 11만 2000명. 이중 8만 3000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레지스탕스 대원 체포나 고문·처형에 관여했던 비시 정권의 군인·경찰·민병대원을 뺀다면, 부역 언론인이나 문단 관련자들의 형량이 꽤 무거웠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독일군 치하에서 언론매체를 통해 '레지스탕스 대원을 밀고하는 것은 신성한 의무'라고 부추기고, 나치 독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을 촉구하는 등 큰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프랑스 대법원이 최후의 나치 협력자이며 전 예산장관인 모리스 파퐁에게 내린 판결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리스는 1944년 8월 나치로부터 파리가 해방되면서 임시 정부의 드골 대통령이 주도한 나치 협력자 대숙청에서 살아남아 스위스로 도주했으나 곧 체포되었다. 이에 대법원은 94세의 고령 나치협력자에게 징역 10년형을 확정했다. 그의 재판은 1981년에 시작되어 17년이나 걸렸다.
한국의 과거 청산은 단순히 한국의 역사 바로 세우기를 넘어서서 아시아 지역에 인권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모델을 만드는 보편성을 지닌 과제이다. 특히 좌절하고 실의에 찬 아시아와 남미의 인권운동에 새로운 영감과 용기를 불어넣어 줄 역사적 사건이다. 과거 청산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동아시아에서 '한국식' 민주주의와 인권의 정신을 담은 '한류' 현상이 아시아 전역에 퍼져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2005.01.06/이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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