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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한국의 위인전 문화
글쓴이: 이형우(gudn81)
등록일: 2007.12.20 조회: 1690
[시론]한국의 위인전 문화
입력: 2007년 12월 17일 17:59:43
 
‘인간으로서의 스크랴빈’이라는 한국에는 번역되지 않은 책이 있다. 러시아 작곡가 유리 카논이 1996년에 쓴 이 책은 형식부터 파격적이다. 대개 평전을 쓸 때 저자는 서술의 대상인 ‘역사 속의 위인’과 거리를 둔다. 그러나 유리 카논은 선배 작곡가 스크랴빈(1872~1915)에 대해 정반대의 태도를 취했다. 대상화는커녕 ‘평전’이 돼야 할 책을 ‘소설화’했다. 자신을 스크랴빈의 친구로 등장시켜 공인 스크랴빈과 사인 스크랴빈을 동시에 조명한다.

-‘모범 인격’ 박제화 현실성 결여-

스크랴빈을 ‘천재’로 우러르는 독자들로서는, 그가 유리 카논과 술을 마시다가 “혼외정사를 통해 성에 대한 기독교적 편견들을 초월해야 한다”며 ‘금단의 연애’ 현장으로 가는 대목 등은 소화하기 거북하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가 혼외정사 등을 죄악시하지 않았다니 독신(瀆神)적 발언으로 비칠 터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역사 속 위인을 박제화하기보다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적절한 것 같다. 안중근 의사가 자서전에서 소싯적에 기생방에 들러 훈화를 잘 듣지 않은 기생들을 매질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솔직히 썼다면, 안의사 전기에서도 그 이야기를 그대로 쓰는 것이 무엇이 나쁠까? 또 사인으로서의 삶도 그렇지만, 공인으로서의 그의 삶과 생각에 대해서도 우리가 솔직해져야 하는 게 아닐까? 이를테면 안의사의 ‘동양평화론’이 세계가 ‘약육강식의 장’으로 인식하면서 당대 역사의 전개를 ‘백인종과 황인종의 대결’을 중심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러·일 전쟁을 “백인 침략자 러시아를 무찌른 황인종 일본의 통쾌한 승리”로 인식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일본 승리의 요인으로 같은 ‘황인종 형제’인 중국인과 한국인들의 협력을 꼽으면서, 그런 한국을 배신하여 식민화에 나선 이토 히로부미의 ‘한국 독립 보존 약속의 포기’와 ‘동양 평화 교란 행위’를 규탄했다. 사회진화론적, 인종주의적 세계관에 기초한 이런 발상은 썩 유쾌하지 않지만, ‘동아시아적 연대’라는 안의사의 화두는 지금도 유효하지 않은가? 인종주의야 좋을 것은 없지만, “일본의 대륙 침략이 계속 이어지면 미, 러, 중의 반일 연대가 일본을 쳐서 일본 국민에게 큰 재앙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동아시아인으로서의 그의 ‘일본을 위한 걱정’은 지금도 우리에게 한 나라의 경계를 넘어서 ‘지역’ 전체를 고려하는 자세를 가르쳐주지 않는가? 안의사를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고 그 고민들을 현재형으로 해석한다면, 위인에 대한 존숭은 사라지고 가부장적 면모와 제국주의 시대의 인종주의 사상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서도 조선인 남녀에게 고루 중요했던 역사적 과제들을 해결해야 했던 독립운동의 위대성과 모순성이 동시에 이해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안의사가 우리에게 현재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위인’으로서의 그 모습부터 해체돼야 한다.

-살았던 모습 그대로 담았으면-

안의사가 ‘동아시아적 공동체’에 대한 정답을 제시했다기보다는 치열한 고민으로 일관했듯, 스크랴빈은 ‘모범 인격’의 소유자도 또 선지자도 아니었다. ‘초인적 음악’으로 인류의 한계를 넘어 ‘황홀한 빛의 새 시대’를 열고자 했던 그의 신지론(神智論)적 신념에는 과학성과 현실성이 결여됐다. 그래도 “듣는 이를 새로운 존재로 만드는 음악을 쓰고 싶다”는 작곡론에 시사점이 없지 않다. 일각에서 내후년 안의사 의거 100주년을 준비한다기에 잠시 생각에 젖어보았다.

〈박노자/오슬로국립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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