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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최대 현금부호 이완용
글쓴이: 조진숙(kjs3001kr)
등록일: 2010.07.22 조회: 1353

‘경성 최대 현금부호’ 이완용...‘매국후 15년간 400억 축재

2010-07-22 11:10

친일파 이완용이 한일강제병합 이후 15년 동안 400억원 이상을 축재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2일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공개한 백서에 따르면 이완용은 1925년 당시 ‘경성 최대의 현금부호’라는 명칭에 걸맞게 최소 300만원(현 시가 약 600억원) 이상을 소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일병합 당시에는 일제와 황실로부터 받은 은사금(恩賜金)과 하사금, 뇌물, 횡령한 금액 등을 합해 이완용의 재산은 약 100만원(현 시가 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백서는 추정했다. 15년간 400억원을 축재, 재산이 3배로 늘어난 셈이다.

이완용은 일제에 협력해 부를 축적했다.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와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대가로 10만원(현시가 20억원)을 받았고 1910년 한일병합 조약 체결 대가로 은사금 15만원(현시가 30억원)을 챙겼다.

모은 재산은 주로 군산과 김제, 부안 일대의 비옥한 논을 매입하는 데 사용됐고 그 결과 일제 초기 이완용의 토지 보유 규모는 여의도 면적의 약 1.9배에 달했다.

또 이완용은 총리대신 재직 시에도 뇌물과 횡령을 일삼았다. 그는 경인철도 부설권을 미국인에게 내주면서 1만5000달러를 받았고, 한미 전기회사를 설립할 때도 옥새를 위조해 고종의 내탕금 40만원(현시가 80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완용은 일제로부터 받은 땅 중 98%를 1915~1917년 일본인 대지주에게 처분해 현재 그의 재산으로 남아있는 토지는 거의 없다.

일본인에게 처분한 토지는 해방 이후 모두 귀속농지로 몰수돼 미군정에 의해 1948년 한국인 소작농에 모두 분배됐다.

해방 전에 처분되지 않고 남아있던 2%(31만4000㎡)의 토지는 해방 이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제삼자에게 매각됐으며, 일부는 그의 후손들이 소송을 통해 되찾아가기도 했다.

정숭교 친일재산조사위 조사총괄과장은 “이 자료는 친일재산에 관한 공식 조사를 역사적으로 정리한 것”이라며 “다만 공식 조사와 함께 주변의 역사적 조사를 포괄한 만큼 부분적인 내용은 더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료정리.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 강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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