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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건국일
글쓴이: 조진숙(kjs3001kr)
등록일: 2010.07.22 조회: 1840

대한민국의 건국일

 

1948년8월15일이 대한민국의 건국일이 아니라 정부수립 일이라고 하면 북한이 주장하는 남한이 괴뢰국가라는 논리가 성립될 수 없다. 1948년8월15일을 1919년4월11일 수립된 국민국가 대한민국의 신정부 수립 일이라고 하면 미군정에 의해 수립된 괴뢰국가라고 비방할 논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북한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자 1919년4월11일 건국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否定(부정)했다.

 

남한에서도 1919년4월11일 대한민국 건국 사실을 부정하는 북한 주장에 적극 동조 고무 찬양하거나 동조결과를 나타내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특히 조선총독부 경찰이나 일본군 헌병 등으로 부역했던 자들이나 1945년9월부터의 미군정 하에서 남로당 등 좌파와 싸운 세력들은 자신들의 공로로 이승만 대통령을 추대하여 1948년8월15일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는 주장을 폈다.

 

또 제헌의회 의원들도 자신들의 공로가 단지 정부수립 공로로 되기보다는 건국공로자로 대우되기를 바랄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된 창설적 국가이면 건국 이전의 대한제국 때의 영토를 승계 했다고 주장하기 어렵다. 헌법 제3조 영토조항도 흔들릴 수 있다. 간도 땅도 대한민국과는 무관하게 될 수도 있다.

 

1948년8월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가 1919년4월11일 수립된 대한민국을 이어받은 실체적 동일성과 계속성이 있는 승계적 국가이면 1919년 당시 대한민국의 모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1945년8월15일은

소련군과 북한에게는 해방《공산화를 위한 점령(占領)》기념일

연합국에게는 일본의 항복 선언일

일본 제국주의 주도세력에게는 종전(終戰, 전쟁종료)기념일

동아시아 주민들에게는 일제(日帝,일본제국주의) 패퇴(敗退)기념일이다.

1948년8월15일은

한국인들에게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일 이다.

북한에서는 남조선 주둔 미군정이 괴뢰국가를『건국한 날』이라고도 한다.

한국 내 일부 인사들도 건국한날 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건국한날 이라 주장하는것은 북한주장에 고무 찬양 동조하는 것으로 국가보안법에 저촉 될수도있다

1919년4월11일 건국된 대한민국은 1910년8월29일 대한제국의 황제가 일본에게 탈취 당한 주권을 국민들이 되찾는 피탈(被奪)국권 탈환투쟁을 거쳐 국가주권을 국민들의 수중에 장악하고 수립된 국민국가이다. 대한제국을 이어받은 실체적 동일성과 계속성이 있는 승계국가로서 조선왕조의 모든 권리를 이어받아 보유한다.

 

1948년7월17일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은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고 있다.

 

현행 헌법 전문의 명문규정에 의하건대 대한민국의 건국기념일은 1919년4월11일이다. 1919년4월10일 각 도 대표로 선출된 인원 29명이 구성한 상해임시정부 임시의정원에서 임시헌장을 채택하고 관제는 민주공화제로 하며 국호는 대한국 대신 대한국으로 하기로 하여 4월11일 대한민국 건국의식(儀式)을 거행했다.

 

초대 국무령으로 선출된 이승만 박사의 요구로 국무령을 대통령으로 개칭해 이승만 박사가 대한민국의 초대대통령이 됐다. 이승만 박사는 1948년에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전제군주의 주권이 국민 수중으로 넘어온 경과를 살펴본다.

1898년3월10일(음력) 독립협회(1896년1898년) 주도로 한성(漢城) 종로거리에서 1만여 명이 참가한 만민공동회는 입헌군주제를 추진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1907년4월20일경 漢城(한성) 남대문 안의 尙洞監理敎會(상동감리교회)교인을 주축으로 결성된 신민회(新民會)는 은연(隱然) 중 미국식 정치제도(공화제)를 염두에 둔 사람들의 비밀결사였다. 황제국가인 대한제국에서 용납될 수 없는 미국식 정치제도인 공화제를 희구하는 비밀결사였으나 들어내놓고 공화제를 표방한 일은 없다.

 

1905년4월5일 미국 리버사이드에서 새롭게 태어나 각지에 지부를 설치하던 공립협회(共立協會)는 동족상애(同族相愛) 뿐 아니라 위기에 처한 고국을 일신해서 새로운 국민국가 건설을 추진키로 했다. 구국운동의 통일적인 연합기관을 국내에 설치하고자 안창호․ 이강․ 임준기․ 신달윤․ 박영순․ 이재순 등이 1907년1월 초순 미국 리버사이드에서 대한신민회(大韓新民會)를 발기하고 안창호는 인천을 거쳐 2월20일 한성(서울)에 도착해 국민국가 건설을 위한 첫 도정(道程)에 발을 내디뎠다.

 

안창호 선생은 1907년1월20일 미국 샌프런시스코에서 귀국 길에 올라 S.S. 도릭(Doric)호 편으로 2월7일 일본 요꼬하마(橫濱)에 기착했고 2월20일 한성(서울)에 도착하기 전 10일정도 요꼬하마와 도오쿄오(東京)에 머물면서 재일 한국유학생 김지간(金志侃)이 마련한 태극학회(太極學會)모임에서 나라를 위해 해외동포들이 힘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애국 웅변으로 청중을 감격케 하는 등 여러 차례 유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 재일 유학생 사이에 인맥을 구축했었다. 뿐만 아니라 그 때 일본에 와 있던 유길준과 박영호 등 개혁세력지도자들과도 만났다.

당시 태극학회에 참여하던 유학생 중에는 장응진(張膺震)․최석하(崔錫夏)․김지간(金志侃)김락영(金洛泳)․박용희(朴容喜)․문일평(文一平)․김락영(金洛泳)․오석유(吳錫裕)․이윤주(李潤柱)․이광수․ 최남선․ 최린. 등이 있었다한다.

 

공립협회는 이어 만주 및 러시아령 연해주지역을 활동의 거점으로 만들기 위해 제1차 원동위원으로 김성무를 파견하였다. 제2차 원동위원 이강(李剛)은 1908년3월 이후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다. 공립협회의 시베리아지부 회원인 안중근은 1909년10월26일 하얼빈 역에서 일본 추밀원의장 이도오 히로부미(伊藤博文,이등박문)를 사살 처단하는 의거를 행하였다. 공립협회의 지부는 만주 시베리아 뿐 아니라 멕시코지부 쿠바지부도 구성됐었다.

 

1910년8월29일 대한제국의 주권인 황제의 권력이 일본에 탈취된 후 신민회원 등은 황제가 뺏긴 주권을 국민들이 탈환하려는 피탈(被奪)국권 탈환투쟁을 전개했다.

 

그 밖의 수많은 정치활동을 거쳐 1919년2월1일《음력 정월 초하루》(토요일) 만주 지린셩(吉林省,길림성)에서 김교헌(金敎獻)등 39 인 명의로 獨立宣言書(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大韓民主(대한민주)의 자립을 선포』했다.

 

건국기원4252년(1919년)2월1일은 음력으로《기미(己未)년 정월 초하루(1월1일), 병인(丙寅)월 갑신(甲申)일》이지만 선포를 위한 준비가 무오년(1918년)에 진행됐음으로 무오(戊午)독립선언(獨立宣言)이라고 불린다.《1919년1월31일은 무오(戊午) 12월30일 을축(乙丑)월 계미(癸未)일 이다》

 

1919년2월8일(음력 1월8일 병인(丙寅)월 신묘(辛卯)일》(토요일) 오전 10시 일본 도오쿄(東京,동경) YMCA 회관에서 조선청년 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청년독립단 11인 명의로 < 2․8獨立宣言(독립선언)성명서 >가 발표됐다.

 

1919년3월1일(음력 1월29일 병인(丙寅)월 임자(壬子)일》(토요일) 오후 2시 京城(경성) 종로의 泰和館(태화관)에서 33인 명의(名義)(29인 참석)의『기미 獨立宣言書(독립선언서)발표와 함께 전국적인 독립투쟁이 폭발했다.

1919년4월11일 건국된 대한민국은 1910년8월29일 일본에 강탈된 대한제국의 국권을 국민들이 되찾아 세운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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