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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소개되는 일본 항복 조인식
글쓴이: 조진숙(kjs3001kr)
등록일: 2010.08.10 조회: 2022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소개되는 미조리 함상  일본 항복 조인식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동영상을 소개한다. 보시는 동영상은 1945년 9월 2일 아침 ,도쿄 만에 정박한 미조리 함상에서 일본이 항복 문서에 조인하는 유명한 장면이다.

미국측에서 맥아더원수와 니미츠 제독과 영국 중국 소련 네델란드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프랑스등 연합국측에서 싸운 모든 국가 대표가 서명을 했고 일본측에서는 시게미스 마모루(重光 葵)외상(外相)과 우메스 미치로梅津 美治) 육군 참모총장이 서명했다.

이 역사적인 장면을 찍은 필림에서 우리 한국인들이 눈길을 줄 인물이 한명있다. 항복 조인식에 대표로 나온 일본 외상 시게미스의 모습이다. 지팡이를 짚은 불편한 움직임이 눈에 뜨인다.

그는 우리민족과 그 10 여년 전부터 안면이 있던 터였다. 1932년 4월 29일 일왕 탄생일인 천장절에 상해 홍구 공원에서 열린 기념식에 당시 상해 주재 일본 총영사 신분으로 참석했다가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다리가 날아간 인물이다.

폭발에 중상을 입은 시게미쓰가 헌병의 등에 업혀서 황급히 병원으로 옮겨가던 그의 사진이 생생하다. 그 때도 그는 항복 문서에 조인하던 때와 같이 연미복을 입고 있었다.

이 항복 조인식을 촬영한 뉴스 릴은 미국 정부의  항복 조인식 장면의 역사적  공식 기록과 거의 만찬가지이다.

미국은 물론 세계의 모든 극장과 도서관에서 상영이 되었고 그 후,TV가 보편화 된 뒤에는 아마도 지금까지 60년간 전 세계에서 전체, 또는 부분이 수백, 수 천만 번 방영 되었을 것이다. 한국 블로그에도 많이 스크랲 되어있고 지금도 미국 유 튜브에도 수 십 개나 떠있다.

역사적인 이 필림에서 윤봉길의사의 의거가 소개되었다. 시게미쓰가 한국 애국자에게 폭탄을 맞아 다리를 잃었다는 소개였다.

여기서 시게미쓰가 전함 미조리에 올라오는 순간의 설명에 귀를 기우려 보시기 바란다. 바로 그가 미군들 경례에 실크 햇을 벗어 답례하는 순간이다.그가 10여 년 전에 중국 상하이에서 한국 애국자에게 폭탄을 맞고 중상을 입었다는 설명이 있다.

동영상 2분 위치에 분명히 'Korean Patriot-한국의 애국자-“라는 영어 멘트가 있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은 세계인에게 지금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남 오세티아 만큼이나 낯선 단어였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 미 국무성 관리가 한국이 어디 있는지 알아보려고 지도를 찾았다는 일화가 이를 대변 할 것이다.

알게 모르게 이 세계적인 뉴스 릴은 한국 민족이 일본인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고 독립을 위해서 투쟁했었다는 사실을 세계에 홍보해준 셈이다.

의거 후 1932년12월 19일, 윤의사에게 응징당한 시라카와 대장이 지휘하던 일본군 9사단 (윤 의사를 자기 사단에서 총살하게 해달라고 강력 요청) 공병 작업장 골짜기에서 총살당하고 아무렇게나 매장 당했던 윤봉길 의사의 혼이 구천에서나마 민족을 위해 한 일을 세계가 알아 준 사실을 알았다면 다소나마 위안을 받으셨을것이다. 

자료정리.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 강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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