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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햇빛 본 사회주의 독립지사 유해>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8.04.21 조회: 1662

<78년 만에 햇빛 본 사회주의 독립지사 유해>

여름을 방불케 하는 날씨를 보인 14일 낮 경북 안동에서는 한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의 유해가 78년 만에 햇빛을 봤다.

6.10 만세 운동의 주역인 권오설(1899~1930) 선생이 잠들어 있는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가일 공동묘지에서 이날 낮 권 선생과 그 부인이 합장됐다.

이날 행사에는 선생의 집안인 안동 권씨 후손들과 마을 주민 등 30여명이 참석해 일제에 항거한 선조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빌었다.

안동 권씨 집안이 500년 넘게 살아 온 이 마을에는 78년 전에 권오설 선생의 유해가 철로 만든 관에 넣어져 봉분도 없이 평평한 땅에 묻혔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회자돼 왔다.

이날 권 선생의 유해를 발굴하면서 그 얘기는 사실로 확인됐고 80년 가까이 땅에 묻혀 있던 철제 관은 온통 녹이 슬고 삭아 뚜껑이 다 내려앉을 정도였다.

권 선생의 후손들은 조상의 유골을 정성스럽게 수습한 뒤 관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부인과 합장한 뒤 봉분을 만들고 작은 비석을 세웠다.

후손들과 안동독립운동기념관측에 따르면 지난 1926년 4월 박래원, 민창식 등과 6.10만세 운동을 계획했던 권오설 선생은 두 달 뒤인 6월 제2차 조선공산당 검거 사건 당시 일본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르다 4년 뒤인 1930년 4월에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했다.

1899년 경상도 안동에서 태어난 권오설은 고등보통학교 시절인 10대 후반 때부터 민족의식을 고취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강제 퇴학당했으며 3·1운동이 일어나자 당시에 살고 있던 전라도 광주에서 시위운동을 주도하다 6개월간 옥살이했다.

1923년 사회주의 단체인 화요회, 북풍회 등과 연관이 있는 화성회(火星會) 결성에 참여한 것을 비롯해 이듬해에는 조선노농총동맹(朝鮮勞農總同盟) 창립대회에서 상무집행위원으로 선출됐고 1925년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집행위원을 거쳐 그해 12월 박헌영 등 고려공산청년회 지도부 다수가 체포되면서 제2대 책임비서에 올랐다.

그는 지난 2005년 정부가 3.1절 제86주년을 맞아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54명을 포상할 당시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된 여운형 선생 다음으로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될 만큼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권 선생의 양자인 권대용(65)씨는 "그 동안 사회주의 계열이라는 이유로 오랜 세월 아버님의 헌신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무덤 관리도 제대로 못하다가 이제야 부모님을 합장하게 됐다"라며 "늦게나마 두 분이 편안하게 쉬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인 김희곤 교수(안동대)는 "권오설 선생은 78년 전 출소 몇 달을 앞두고 국내 정세와 관련해 무자비한 구타를 당한 뒤 서대문형무소에서 숨을 거뒀다"라며 "함석철로 관을 만들어 땜질까지 해 놓은 것은 신간회의 광주학생운동 조사 등 민감했던 당시 정세에서 권 선생의 구타 사망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한 일제의 간교한 술책이라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권오설 선생의 유해가 잠들어 있던 철제 관은 안동독립운동기념관으로 옮겨 보존처리를 거친 뒤 영구 보존될 예정이다.

처 : 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yongm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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