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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8-10 [ KBS취재파일 기사본문입니다]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8.08.25 조회: 3082

원문 :  http://news.kbs.co.kr/article/society/200808/20080810/1612647.html

<앵커 멘트>

오는 금요일은 63주년 광복절입니다.

특히 올해는 대한민국 60주년 행사와 겹쳐 정부에서는 여느 해와 다른 축제의 장을 마련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광복절이 즐겁지만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독립을 위해 힘쓴 독립유공자들의 후손들입니다.

독립유공자를 예우한다는 법까지 있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내고 있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서울의 한 주택가 골목길.

길옆으로 난 철제문을 열고 들어가자 곧바로 반 지하 전세방으로 연결됩니다.

밖은 35도에 육박하는 폭염과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지만 이곳에 들어서자 눅눅하고 음산한 기운마저 감돕니다.



<녹취> 양지홍(독립유공자 아들/2001년 귀화) : “(축축해요?) 축축하죠. 물 아니야.”

벽은 물론 바닥까지 곳곳에 곰팡이가 피다보니 아예 벽지를 모두 뜯어냈습니다.

뜯겨진 벽면에 걸려있는 액자 하나.

<녹취> 양지홍(독립유공자 아들/2001년 귀화) : “8월 15일 대통령 건국훈장...”

경기도 양평이 고향인 양 씨의 아버지는 지난 1920년대 중국으로 이주해 독립과 민족 교육은 물론 광복군으로 활약한 공로로 건국훈장을 서훈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 지난 2001년 이제는 대학생이 된 딸과 함께 중국에서 귀화한 양 씨.

<녹취> 양지홍(독립유공자 아들/2001년 귀화) : “내 고향이고, 아버님 독립운동하고 나라를 위해서 목숨 내놓은 사람인데 내가 내 고향을 버릴 수 없고 나이 들수록 고향 찾아오고 싶고...”

대학 강사 직업까지 포기하고 고국을 찾아 독립유공자 서훈까지 받았지만 양 씨에게 돌아온 것은 매달 지급되는 생계지원비 30만 원 남짓이 전부입니다.

낯익은 사진 한 장.

바로 안중근 의사가 지난 1910년 3월 동생 둘을 마지막으로 면회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안 의사 앞에 있는 동생 정근, 공근 형제.

안 의사가 순국한 뒤, 이들 두 형제는 만주, 상해 등을 떠돌며 형 못지않은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세상을 등졌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유가족은 대부분 해외를 떠돌게 됐고, 현재 국내의 유일한 유가족은 동생 안정근 선생의 며느리와 손녀뿐입니다.

모두 건국훈장 독립장까지 추서 받았지만 현재 이들 모녀는 8평 임대아파트에서 근근이 살고 있습니다.

<녹취> 안기수(안정근 선생 손녀) : “경제적으로 살아가는데 좀 살기가 좀 힘드네요. (어머니께서는 공개하시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네, 공개하시지 않으려고 해요.”

안 씨 가족이 연금을 못 받는 이유는 바로 앞뒤가 맞지 않는 유공자 연금제도 때문입니다.

지난 1960년대부터 지급되기 시작한 독립유공자 유족 연금. 하지만 73년 유신시절 개정된 법으로 광복 이전 사망한 유가족은 손자까지, 광복 이후 사망한 유가족은 직계 자녀까지로 연금 지급이 한 세대씩 축소됐기 때문입니다.

광복을 기점으로 싹둑 나누다보니 정작 독립운동의 기간이 짧아도 해방 전에 사망한 경우보다 독립운동을 오래했지만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경우 지원은 오히려 축소됩니다.

<인터뷰> 조윤구(유정 조동호 선생 장남) : “해방 전에 조금 더 일찍 돌아가신 분들은 연세가 많으신 분들도 있을 거고 늦게 돌아가신 분들은 연세도 적을 때 독립운동을 시작해서 끝까지 투쟁하다가 건장하게 살아남으신 분들은 혜택을 못 받는 그런 아이러니컬한 법이 지금 보훈법이에요.”

결국 90년대 이후 훈장을 서훈 받은 유가족들은 대부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인터뷰> 김삼열(독립유공자유족회장) : “지금 독립유공자가 포상을 받으면 증손녀 와 있는데 손자까지 준다고 하면 그건 안준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아요. 정부로부터 훈장증 하나 종이 한 장 받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사람들 훈장증 받으면 그것 참 고통스럽습니다.”

그나마 연금 지급도 장남에게만 한정됩니다.

올해 대학에 들어간 이윤선 양은 첫 방학을 맞았지만 아르바이트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녹취> 이윤선(대학생/독립유공자 후손) : “부모님께서 이제 여기 사장님이랑 아시고 좀 집안 사정도 요즘 경제가 많이 어려워지면서 좀 어려워졌잖아요... 용돈이라도 벌어 쓰려고 시작하게 됐어요.”

학비를 벌기 위해 밤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오는 딸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어머니 조영주 씨 역시 독립유공자 후손입니다.

<인터뷰> 조영주(독립유공자 손녀) : “지원 받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지원 받은 적도 없고요. 저희들은 그냥 안 나오는 걸로 알고 그냥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서 지원 대상은 장남들에게 한정하다보니 조 씨처럼 딸이거나 차남, 삼남일 경우에는 지원은 아예 없습니다. 훈장 추서는 받았는데 정작 지원은 받지 못한 후손들은 급기야 애써 받은 훈장까지 반납하기도 합니다.

<인터뷰> 이승봉(독립유공자 손자, 건국훈장 반납) : “형평성의 문제 이게 가장 가슴이 아픈 거에요. 같은 국민 내지는 같은 유공자 후손으로 형평성에 배반한 그런 건 이제...”

<인터뷰> 방병건(독립유공자 손자, 건국훈장 반납) : “우린들 반납하고 싶었겠습니까? 우리의 절규도 통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면서도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으니... 우리는 어느 나라에서 왔습니까?”

지금까지 건국훈장을 받은 유공자 후손은 5천 백여 명. 이 가운데 유족등록증은 받았지만 연금이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유족은 8백여 명이 넘습니다. 대부분 해방 이후 사망한 유공자 후손들, 즉 손자녀들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몇 십만 원의 지원금조차 아쉬울 정도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학교 3학년인 재윤이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산지 10여 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부모의 이혼과 가출, 그 뒤 할머니에게 덩그러니 남겨진 재윤이의 할아버지는 독립유공잡니다. 하지만 미망인인 할머니에게 지급되는 연금으로는 생활비도 빠듯합니다. 때문에 손녀인 재윤이는 문제집 한권 사기도 힘듭니다.

<녹취> 윤재윤(중3/독립유공자 손녀) : “문제집이라든가 학원이라든가 강의 같은 거 못 들으니까 답답하긴 해요. (그럼 어떻게?) 지금 제가 다니는 공부방이 있는데 거기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후원을 해주시거든요.”

그나마 지금의 전셋집도 이달 말에 비워줘야 할 형편입니다.

<인터뷰> 할머니(독립유공자 미망인) : “내가 건강이 안 좋으니까 애를 잘 거두지 못하고 학교 갔다 와서 자기가 설거지를 해야 되고 자기도 고달프죠. 남들처럼 부모가 잘 가르치면 좋은데 그런 처지가 못 되니까 그게 좀 안타까워요.”

강원도 양구군의 한 마을.

제4땅굴이 발견된 최북단 마을인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올해 78살의 한옥수 할아버지. 비탈진 넓은 밭에서 콩과 고추 농사를 지은 지 어느덧 3년.

<녹취> “(한 바퀴 도시면 힘이 빠지시겠어요?) 아~힘들지 정말 힘들어 한 바퀴만 돌아도 그 전에는 내가 잘 못 돌았어. 처음에 와서는... 지금은 괜찮아.”

집안 곳곳 놓여진 태극기와 훈장이 말해주듯 독립유공자 손자인 할아버지가 무작정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은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한옥수(독립유공자 손자) : “이게 무허가 집이거든. 무허가 집에 와서 내가 다 고쳐 놨으니까 여기 와서 살 수도 있고 자식들이 지금 집 없는 자식이 넷이여.”

독립군 외아들의 장손이지만, 본인은 물론 자식 4명까지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하고, 집 한 채 없이 살아온 것이 어느덧 한이 됐습니다.

<인터뷰> 한옥수(독립유공자 손자) : “내 재산 팔아서 독립 운동했고, 내 재산 팔아서 총도 사고 내 재산 팔아서 말이지... 독립운동 한 사람을 이렇게 대우한다는 것은 아마도 대한민국 밖에 없을 것 같아...”

가장 돈이 필요했던 시기에는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 다니기에 바빴고, 유공자 후손이 된 이후 지원금은 할아버지대로 끝이기 때문입니다.

독립 운동가이자 언론인으로 신한청년단을 만들었던 유정 조동호 선생.

김구, 이승만, 안창호 선생 등과 함께 임시정부 주축이었던 조동호 선생의 장남 조윤구 할아버지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필요한 시기에 공평한 교육의 기회를 받지 못한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습니다.

<인터뷰> 조윤구(유정 조동호 선생 장남) : “해방 60년이 되면서도 친일파가 득세하는 것은 그 사람들은 후손을 쭉 가르쳤고, 우리 독립지사 후손들은 배우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그 차이로 인해서 많은 고생을 이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민간단체 조사 결과 독립유공자 후손 절반 가량(44%)이 중졸 이하의 학력, 58%가 직업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10명 가운데 6명은 하층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민간 차원의 돕기 사업을 위해 독립유공자 유족들을 조사했더니 기초생활 보호대상자와 부채 과다, 생계곤란, 무의탁 독거 등 사실상 모두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인터뷰> 홍승구(흥사단 사무총장) : “독립 유공자 법률의 법 취지 자체가 독립을 위해서 애 쓰신 분들, 그 후손들이 국가가 그분들의 활동에 대해서...어떻게 보면 빚을 지고 있는 셈이거든요. 국가 입장에서는...”

결국 민간 차원의 다양한 돕기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많은 유족들을 돕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상 방치하다 뒤늦게 법률로 독립유공자 예우에 나선 셈인데, 첫 단추부터 잘못된 만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인터뷰> 방학진(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 “우리나라는 65년 한일협정, 또는 그 전에 63년 처음 도입된 18년 동안 거의 20년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방치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20년 동안이 독립운동 후손들한테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학교 교육을 받아야 되고 사회 진출하는 중요한 시기에 거의 방치되다 시피하고 난 다음이니까...”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자긍심에도 불구하고 가난의 대물림 속에서 이제는 하소연도 지쳤다는 독립유공자 후손들. 친일파 후손들의 뻔뻔스런 재산 찾기 소송도 강 건너 불구경 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 광복 63주년, 대한민국 60년. 해마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날아드는 초청장이지만 올해는 더욱 그들만의 잔치로 여겨져 야속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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