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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 한국학 강좌 청강기 (3)
글쓴이: 송재호
등록일: 2013.01.09 조회: 1565

규장각 한국학 강좌 청강기(3)

                                       송재호(유족회 운영위원)

 

지난 해 11월 30일에 서울대 부속 규장각(奎章閣)의 금요시민 강좌인 “실용서로 본 조선”의 제 12강인 “문자 학습과 훈몽자회(訓蒙字會)”가 규장각에서 있었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소의 이영경 HK 연구교수가 강의를 했고 그 내용은 주로 “한글의 학습과 그 교재”에 대한 것이었다. “훈몽자회”는 조선 중기의 어학자 최세진(崔世珍)이 “천자문” 등의 기존의 한자 교과서가 너무 어려워 일상생활을 중심으로 새롭게 만든 한자 학습서로서 한자와 함께 한글도 익힐 수 있도록 되어있는 책이다. 언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서민들을 위해 언문자모를 함께 기록하여 서민들에게 언문을 먼저 익히게 하고 다음에 훈몽자회를 익히면 깨닫고 가르치는 유익함이 있을 것이요 한문자의 이해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한글 창제 이전에도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 말 표현을 위해 이두(吏讀), 향찰(鄕札), 구결(口訣)이 창안이 되기도 했다. 한글 창제 이후에 400년 간 한자와 한글의 이중적 문자생활을 영위하는 등 제반 발전기간이 있었다. 한글 창제 초기 한글 학습 교재는 훈민정음 해례본 및 언해본, 훈몽자회의 언문자모 등이었다. 한글 교육의 방법은 언문자모에 맥락이 닿는 반절표(半切表) 익히기(받침법 배우기), 쓰기 연습, 노래로 배우기 등을 통해서였다. 초기 한글 사용의 기록으로서는 양녕대군의 편지, 궁인 덕중이 구성군 이준에게 전한 연애편지, 언문 역서 발행, 제문 번역 등이 있다. 한글은 15세기까지는 중앙에서 사용되었고 16세기 초부터 지방에서 한글 문헌이 간행되었다. 16세기 중엽 경에는 한글 보급이 지방에도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되었고 사대부가의 남성과 여성들이 한글을 자유롭게 구사했다. 18세기 초엽에는 하위계층에서도 한글 해득자가 크게 늘어나 있었다. 한글은 상층(양반)에서부터 중간층(중인층)과 하층(노복 등 하층민)에 이르는 과정으로 단계적으로 확산되었다.

당시 한글로 사용된 문헌으로서는 선조 임금의 편지, 인선왕후(효종 비)의 편지, 정조 임금의 원손 시절 편지, 학봉 김성일의 편지, 송강 정철의 편지, 추사 김정희의 편지 등 많은 실례들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과거의 한문으로 된 귀중한 전적들이 많은데 그에 못하지 않게 한글로 된 과거의 소중한 전적들도 많이 산적해 있어서 후인들의 비상한 관심과 지속적인 연구가 요망되고 있다. 한 언어는 한 민족의 문화 활동의 총화요 모든 창조적 행위의 근본이기도 하다. 우리말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언제나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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